[언론보도] ‘사명’에 대하여 (경기일보 2022.3.6. )
- 성균인문동양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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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7
[아침을 열면서] ‘사명’에 대하여 (고재석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
경기일보 2022.3.6. 보도자료 원문 바로가기
국가행정의 수장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언론에 ‘사명’이나 ‘명운’ 같은 단어가 눈에 띄게 노출되고 있다. 후보자 모두 시대적 사명이나 정치적 숙명으로 출마했고, 국가의 명운이 선거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호소한다. ‘사명’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뜻한다. 그 임무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에 올라 주어진 책임(責任)도 있고, 지위는 주어지지 않더라도 스스로 지고 있는 자임(自任)도 있다. 해와 달이 어김없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자기 역할을 해내듯, 우리는 크고 작은 책임이든 자임이든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자 힘써야 한다. 자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천지의 자연적 본질이자 인간의 당위적 목표다. 아쉬운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 사명을 잘못 알고 있고, 알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명이 무엇인지 자각하는 ‘지명(知命)’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자기 역량을 넘어서고, 자기 자리가 아님에도 자신의 사명이라 굳게 믿고, 자신만이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면, 사명을 모르는 것이다. 금세 무너질 담벼락 옆에 서 있으면서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경우와 같다. 욕심은 마음의 눈을 가려, 자신도 주변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를 망치는 길로 이끈다. 자신을 성찰하고 욕심을 제거해 자기 천성대로 살아가기 위한 수신의 노력이 요구된다.
사명을 알았거나 임무가 부여됐다면, 엄중하게 수용하고 굳세게 실천하는 ‘외명(畏命)’의 자세가 수반돼야 한다. 욕심에 혹은 중압감에 주저하거나 외면하면 자기 임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엄숙하게 자신의 사명을 수용하고 사명 완수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사명의 실현 과정은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진심이 곡해되고 비난이 점철돼 외로울 수 있다. 남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가야 한다.
주어진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하다 보면, 객관적 한계인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이상이 실현되는 것도 명이고, 중도에 좌절되는 것도 명이다. 운명은 시도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대충하고, 요행만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찾아오지 않는다. 자기 사명을 자각하고 실현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임무를 다할 기회를 얻으면, 성급하게 성과를 내려 하기 보다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사명은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만이 알 수 있고, 굳센 실천을 지속하는 사람만이 바르게 할 수 있다. 맑은 마음을 회복해 자기 천성을 자각하고, 결과에 상관없이 사명의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가 선출되고 다듬어져 국가의 명운이 한층 더 밝아지기를 희망한다.
고재석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주임교수